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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부모의 ‘가스라이팅’에 병들어 가는 아이들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20년 09월 10일
ⓒ 경기헤럴드



칼럼니스트 · 전교장 장세창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단어를 들어 보았는가? 가스라이팅은 ‘가스등’이라는 1938년 작품인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로, 타인의 심리 또는 상황을 조작하여 그 타인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내 훈육은 네 잘못으로부터 비롯됐어. 그러니까 네 문제야.’ 라고 계속적으로 말함으로써, 종국에는 타인의 주체성을 잃게 하고 본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어느 블로그에 소개된 가스라이팅은, 학대자, 나르시시스트, 사이비교주, 독재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조작전술중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다. 잠깐 연극 이야기를 하자면, 극 중 남편은 집안에 있는 가스등들을 고의로 어둡게 만든다. 그리고 어두워졌다고 말하는 부인에게 어둡지 않다며 계속 주장한다. 부인은 처음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남편의 말에 설득당해, 자신이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이라 믿게 된다.
이렇게 네가 문제야, 네가 잘못됐어, 하며 계속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놓게 되면, 상대방은 자존감이 깎이며 판단력 또한 잃게 된다. 당연히 오랫동안 당하면 정신이 피폐해지고, 상대에게 세뇌당한 듯 끌려다니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이 가스라이팅이 부모 자식 간에 일어난다면 어떨까. 부모가 왜 자식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부모-자식의 가스라이팅은 결코 드물지 않다. 21세기의 청소년들은 우울증이나 틱장애, 수면장애나 불안장애, 거식증 또는 폭식증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 경우, 이 문제들의 원인은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남이 아닌 부모가 자식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스라이터라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으로 문제가 생긴 자녀의 부모에게 ‘왜 그랬는지’를 물으면, 열 명 중 모두가 자식을 위해 했다고 답한다. 행한 가스라이팅도 성적이 안 좋아서 좀 뭐라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가 가스라이팅이다. 방 청소를 안 하는 아이에게 청소 좀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는 것과, 넌 왜 항상 그 모양이냐며, 지속적으로 나무라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렇게 운을 뗀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영혼에 상처를 준다. 상대를 완전히 자신의 소유물로 보면서, 정작 그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보이는 단점들에 쓴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다 보면 자식은 자신감을 잃고, 이는 곧 사회성 결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습관적으로, 버릇처럼 했던 잔소리가 가장 사랑하는 내 자식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원인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가스라이팅에 병들고, 생겨난 열등감에 시든다.
기능과 위세를 상당 부분 사교육에 빼앗긴 공교육, 학교가 아이들을 치료해 줄 수 있으리란 기대는, 비대면이 점차 대세인 현재로선 허황되다. 아이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꿈, 내 욕심, 부모로서의 나를 돋보이기 위해 성장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가스라이팅 속에 빠져 있으면 주변을 못 보는 것은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진흙탕에서 나와, 우리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야 할 21세기가 아닌가. 그리고 국민들 간의 잠재적 갈등은 정치권에서 먼저 제기하지 말자.


경기헤럴드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20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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