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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으로 이웃과 함께하려는 군포의왕제과협회 이관형 지부장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0년 01월 27일
↑↑ 자신의 꿈으로 이웃과 함께하려는 군포의왕제과협회 이관형 지부장
ⓒ (주)경기헤럴드


자신의 꿈으로 이웃과 함께하려는 군포의왕제과협회 이관형 지부장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상반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꿈을 전부 버린 사람과 고이 간직한 사람의 삶은 상이하다. 꿈을 버린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지만 꿈을 간직한 사람은 늘 희망을 안고 산다. 자신의 꿈은 문학도이지만 제과기술로 지역에 봉사하며 낮은 자세로 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군포의왕제과협회 이관형 지부장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시를 쓰고 있다.

봉사자로부터 봉사정신을 익히다.
지금은 아파트 지대로 바뀌었지만 당시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도보로만 생활해야 했던 용인의 구성면은 그가 태어난 고향이다. 5학년 무렵에야 하루에 2번씩 버스가 다니기 시작해 겨우 수원시를 구경할 정도였다.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던 그는 큰형님과 나이차가 24살이나 되는 대가족 문화에서 명석한 아이로 성장했다. 어려서는 마을사람이 너는 무엇이 될 것이냐고 물으면 ‘마을 이장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로 순박한 아이였고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언제나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당시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이장에 대한 이미지는 보수를 받지 않고 마을을 위해서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각인되어 있었다. 그때의 생각이 오늘날 그가 봉사에 임하는 낮은 자세를 가지게 했는지 모른다.
그는 중학교를 다닐 때 모친을 여의였고 아버지마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셔, 부모님의 그늘 없이 한참동안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도 어렵게 진학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모든 면에서 탁월하게 두각을 나타냈고, 글쓰기와 손재주까지 뛰어나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다시피 했던 그였다.
그러나 중학교를 진학할 형편이 못되어 포기하려하자 6학년 담임선생님이 그의 큰형님을 설득해 겨우 입학하게 됐다. 그 대신 자신의 조카인 큰 형님의 딸은 같은 해에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동생 때문에 딸의 진학을 뒤로 미루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수원에서 제일 명문고등학교인 수성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참고서나 책은 고사하고 안경을 써야 할 시력에도 안경 맞춰달라는 소리도 못했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 칠판글씨를 바로 쓰지 못하고 늘 친구의 노트를 보며 적곤 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은 생각도 못해볼 일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권유 끝에 전문대에 장학생으로 가게 됐다. 그는 문학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자신의 적성과 다른 취직 잘 되는 전자공학과를 선택했다. 학창시절 외로움이 가득할 때마다 노트에 시와 수필을 적어가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던 그였기에 이공계는 자신과는 먼 세계였던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다.
군복무를 마치고 티브이 광고회사에 취직하여 사회에 첫 발을 디디게 됐다. 그 회사에서 88올림픽 호돌이 마크 위에 있는 상모가 실제로 돌아가듯이 보이는 전광판을 만드는 파트에서 일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키워나갔다. 그의 성실함과 재능을 알아본 디자인 과장이 그에게 디자인을 해보라고 할 정도로 상급자들에게 인정받는 직장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군복부중에 사단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하여 포상을 2번이나 받고 휴가를 나올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용인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면서도 남보다 일찍 출근하는 등 성실성과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가 전문대를 나왔다는 것만으로 진급을 비롯한 여타의 처우에 차별이 있었고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때마침 제과점을 운영했던 누님의 권유로 평택에 있는 친척 제과점으로 짐을 싸들고 내려가 제과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마치면 제과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천지였기 때문에 그는 너무나 늦게 제과기술에 입문하는 격이 되었다. 그러나 명석했던 그는 최소한 7년 정도 걸리는 제과기술을 2년 만에 완성했다. 그는 제과기술을 배우는 동안은 새벽 4시부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잘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를 돌아보며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훗날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매일 반추하는 생활을 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진정한 꿈인 문학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늘 최고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그는 밤11시나 12시에도 케익틀을 가져다 놓고 연습을 하는 등 제과제빵 사업에 경제적인 포부를 걸었다. 당시 그의 제과기술은 수원에 싹 퍼져서 이 박사라는 명칭으로 소문이 돌게 되었고 후에 제과협회의 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협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이사회를 하는데 안건이 없으면 화투로 회의를 대신할 정도로 분위기가 저급했었다. 그래서 부인들 사이에 남편이 이사회에 나가면 화투만 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 여파는 낮은 참여율과 결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가 지부장을 맡으면서는 회원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얻어갈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는 모두가 다 함께하는 회의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서로 정보와 새로운 기술을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를 낭송이나 인생이야기를 하라고 하여, 노장들에게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점차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 점점 변화되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의 변화에 부인들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꿈으로 이웃과 함께 하다.
제과점마다 획일적인 제품들로 되어 있던 것을 개선하여 경영에 도움을 주고자했던 그는 회원들을 위해 경영에 대한 책을 보면서 공부하고 새로운 경영기법이 나올 때마다 함께 공유했다. 또한 각자가 자기 제과점의 특색 있는 제품을 가지고 나와서 설명하는 식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가다보니 이제는 각자 특성화 된 제과점으로 탄생하게 됐다. 그의 이런 이사회의 진행이 소문이 나면서 안양지부장과 수원지부장이 찾아와 벤치마킹을 해가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협회 소식지를 만들어 제과점광고와 회원소식을 편집하여 공유했다. 그러다보니 매출과 회원 간의 단합이 더 잘 되었고, 협회소식지는 점점 경기도 지역으로 번져 나가게 됐다.
그가 의왕으로 이사를 와서 처음 시작한 봉사활동은 어려운 이웃에게 자신이 만든 제과와 음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푸드뱅크나 사회단체가 적어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그는 그 외에도 청소년 지도위원으로 밤10시부터 우범지대, PC방, 노래방을 돌며 청소년들의 귀가를 도왔다. 그리고 소년원과 연계되어있는 고봉중고등학교의 제빵과 학생들의 지도와 취업알선에도 동참했다. 특히 제과기술을 전수하며 그들에게 용기와 인성교육으로 진정한 사회인이 되도록 친형제처럼 훈육했다. 지금은 자율방범대원 이사로써 지역 치안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군포지역 9개 위생단체의 부회장도 맡고 있다. 그런 공로로 그는 시장상, 도지사상, 장관상을 받았지만 자만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봉사에 임하고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다 존경한다는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존경심이 생긴다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보다도 현실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하며 자신이 닮고 싶은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에서 일까? 후배들에게 그는 “지금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혹은 자신의 전공이 아니라도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의 은덕으로 출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수성가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기둥이 되는 사람도 있다. 흔히 우리는 자수성가한 사람을 본보기로 교육을 받아왔다. 세상은 후자보다도 전자에 더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것을 하나씩 변화시키고 있는 이관형 지부장. 그의 꿈이 문학도라 했던가? 이제 그의 꿈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 같다. 그가 문학도로 입문할 때 우리 모두 큰 박수를 보내면 어떨까?

약력
경기 용인출생
수성고 졸업
오산공대 졸업
의왕시 청소년 지도위원
대한제과협회 군포의왕시지부장
경기제과제빵페스티발 추진위원
대한제과협회 경기도지회 부지회장
대한제과협회중앙회이사
경주이씨 문정공파 종친회 회장
청소년보호센터 중앙회장상
대한제과협회중앙회장상
국회의원상
의왕시장상
식품의약품안전청장상
경기도지사상
보건복지부장관상


편집부 기자 / rch2927@korea.com입력 : 2010년 0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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