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0-12-04 오후 02:58:1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인물

김유경 부녀회장을 만나다.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09년 08월 14일
↑↑ 김유경 부녀회장
ⓒ (주)경기헤럴드
김유경 부녀회장을 만나다.
흔히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법이 수없이 다양하고, 각기 머문 곳에서 지향하는 가장 이데아적인 선(善)이 있기 때문이다. 사유(思惟)에 교착점이 있다면, 어떤 삶이던 그 기저에 상황윤리적인 인간성과 만인의 공감을 부를 수 있는 감흥이 도덕성과 윤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18년 동안 아기 키우듯 지키며, 가정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던 지고지순한 순정파 김유경 부녀회장을 만났다.

독립군 후예로 생활하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월남한 독립투사의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그녀는 서울이 고향이다.
그녀의 선친은 일본유학 중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귀국하여 학도병으로 강제 입대했다. 일본이 중국으로 진군하여 만주에 있을 때 부친은 동료 학도병 6명과 함께 광복군으로 전향했다. 당시 일본군은 도망가는 학도병을 향해 총을 쏘고, 광복군은 일본군의 진격으로 오해하여 총을 쏘는 가운데 흰 깃발과 함께 무사히 전향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그녀의 부친은 광복군 활동에 동참하였고 구국운동을 위해 정열을 아끼지 않았다. 나라를 위한 부친의 행보는 해방이후에도 이어졌다. 부친은 8.15 해방당시 바로 집에 오지 않고,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한국군의 사후처리를 정리하며 잔일을 보았던 것이다. 모두 전사한줄 알았던 부친이 함흥에 돌아왔을 땐 이미 사회는 공산화가 진행 중이었다. 집안이 대지주였는데 토지를 빼앗기고 권리행사를 못하자, 그녀의 조부모가 서둘러 아들부부를 남하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독립운동가로 젊음을 태웠고 빈손으로 남하하여 생활터전을 이루며 첫아이로 낳은 딸이 바로 김유경 부녀회장이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서 어렵사리 생활해 나갈 때, 박정희대통령 시절 부친이 독립투사로 인정되어 원호를 받을 수 있었다. 힘든 가정경제에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경제적 지원보다 삶의 의욕과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은 태극기에 대한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
부모님의 교육열의가 높아 그녀의 집안 가정환경은 교육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어려서부터 “배워야 산다. 공부는 때가 있다. 제 시기 놓치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듣고 살았던 그녀다. 그래서 친구들은 일찍부터 경제 일선에 나섰지만, 그녀는 부모님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맏이로서 동생을 보살피며 공부를 유난히 잘했던 그녀는 서울 여상을 나왔다. 그 당시 제일 실력이 좋은 학교라는 평판이 있었지만, 그녀는 경기여고나 숙명여고를 진학해 대학에 다니고 싶었었다. 그러나 첫째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챙기고 부모님을 도와야했기에 상업학교를 나왔다. 졸업 후 처음에는 교통부 해난심판위원회에서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코롱’ 경리과로 직장을 옮겼다.

효부로 가정을 책임지다.
결혼 16년차 즈음 아이들은 이른 청소년기로 큰 아이가 고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마냥 행복했고 언제까지나 단란할 것 같았다. 사람이 좋은 일만 있으면 신도 시샘한다는 얘기가 꼭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었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듣기까지는 말이다. 평화로운 가정에 갑자기 날아든 날벼락 파편들이 곳곳에 박혔다. 우선 가장이 누워있으니 병원비와 함께 생계문제, 아이들 교육문제, 간병 등 생활에서 그녀를 조여 오는 압박은 견딜 수 없는 나락의 상태였다.
그나마 그녀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준다는 종교적 믿음이었다. 그녀는 고통과 남편의 회복을 오직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고 그것이 그녀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일정 치료기간이 지난 후, 그녀는 남편을 병원에서 식물인간 외에 더 이상의 가망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퇴원시켜 직접 간병에 나섰다. 남편은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초점 없이 간신히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이었다. 남편의 의식만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녀는 홈패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세끼식사와 간식, 대소변 등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해야겠기에 남편은 늘 그녀 옆에 뉘여 있었다. 마침 홈패션일은 솜씨가 있었는지 간판 없이 주문생산만 했어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생활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간병이후 처음으로 눈에 초점을 가졌다. 그녀로서는 놀라운 변화에 기쁨과 감격이 벅차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남편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들에게는 아버지 그녀에게는 남편이란 존재감을 줄 수 있어 그나마 안위했다는 그녀였다. 작은 움직임으로 희망을 읽었던 그녀는 한줄기 빛을 보았고, 그렇게 7년 뒤 결국 남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치 갓난아이가 내는 옹아리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기도 생후 6개월이면 엄마 아빠를 부른다. 그토록 오랜 세월 기다려 옹아리 한번 듣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던 그녀. 누워만 있어도 등에 욕창 한번 생기지 않도록 간병하고, 가장으로서 억척스럽게 살며 아이들 대학교육까지 시켰던 순간들이 모두 보상을 받은 듯 했다. 남편은 점차 상실했던 언어구사력과 기억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갔다. 다만 누워있는 동안의 기억은 없고 아이들 어렸을 때와 신혼시절을 부분적으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남편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남편이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자신에게 삶의 의미였고 생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늦지만 하나씩 하나씩 발달해 가는 과정을 기쁨으로 살아왔지만, 병상 18년째 되는 어느 날 남편은 세상을 홀연히 떠났다.

대를 이어 나라사랑하다.
그녀로서는 삶의 어떤 철학이나 목표보다도 오직 신앙의 힘으로 견뎌왔던 질곡의 세월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맞게 됐다. 먼저 그녀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나라사랑 실천의 길을 택했다. 남편 간병하던 시절에 자신도 부인암과 임파선암 3기를 선고 받았다가 성공적인 수술로 살았기에, 덤으로 얻은 남은 인생을 더욱 가치 있게 살고 싶었다. 그러다 국경일에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180가구 중에, 꽂혀 있는 태극기가 다섯 개도 안 되는 것을 보고 태극기달기 운동을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지 않기에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시청 공무원이 길가 가로등에 태극기 꽂는 것을 보고 착안을 했다. ‘사람들이 달지 않으면 나도 내가 직접 달겠다.’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태극기를 마련하여 국경일이면 아파트 전체 공동베란다에 직접 달기 시작했다. 이제 국경일이면 태극기 바람이 아파트전체에 나라사랑처럼 나비되어 훨훨 난다. 펄럭이는 태극기는 보기에도 흐뭇하고 광복절이면 가슴 뭉클하니 아버지 생각도 진하게 생각난다는 그녀다. 앞으로도 봉사로 남은 인생을 채우고 싶다는 그녀는 “젊은 엄마들의 의식이 깨어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태극기를 달지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고 비참한가? 유관순언니가 독립만세를 부를 당시는 헝겊도 제대로 없었다. 저고리나 고쟁이 뜯어 태극기를 만들어 애국하는 마음에 보탰다. 그것이 나비효과를 가져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애국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보이고,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이른다.
그녀는 동 부녀회장으로 어른공경에도 앞장서고 있다. 어르신들은 때때로 잔치를 벌이며 보살피는 그녀에게 천사표 동그라미를 준다. 저녁이면 아파트 청소년 공부방에서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에서는 외국인 선교회에서 나눔을 함께하고 있다. 주로 몽골, 파키스탄 등 외국인에게 선교사업 및 하나님 사랑을 심어주며 일자리 창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녀의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 나라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나비되어 밝은 사회 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약력
서울출생
서울여상졸
샛별한양아파트617동 부녀회장
달안동 청소년공부방 봉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09년 08월 14일
- Copyrights ⓒ경기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안양시의회 정완기 의원 “안양시청 부지 재개발해야”
송정지구 중학교 유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의왕시 생활개선회 사랑의 김장 나눔행사 진행
군포시의회, 시민향한 의원발의 봇물
새안양로타리클럽, 사랑의 손길로 회원을 위한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 실시
고향과 모교에 책보내기운동(14)-2,000개 기관목표(현재 838 여개 기관 배포)
군포시의회 ‘행복나눔봉사단’, 코로나19 방역강화 가두캠페인
의왕시, 부곡도깨비시장 내 포토존 설치
군포시 산본1동·군포소방서, 산본시장 합동 불조심 캠페인
제8회 불우청소년 돕기 틴틴캐럴송페스티벌 개최
경기도·의회
경기도민 10명 중 7명, ‘기본대출’ 도..
경기도민 10명 중 7명, ‘기본대출’ 도입 적절 경기도민 10명 중 7명이 국민 누구.. 
박근철 대표의원 더민주당 전.. 
이재정 교육감, “모든 도민 .. 
조광희 도의원, “코로나 잡고.. 
정희시 도의원, 군포시 장수마.. 
경기도의회, 전국 지방의회 최.. 
경기도의회 경기교통공사 인사.. 
아름다운 사람들
진인사대천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엄다.. 
만인의 꿈을 안고 작은이들의 벗이 되고 있는 심.. 
긍정과 가능성으로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의 남경.. 
민본사상으로 변호사상을 세우고 있는 박경훈 변.. 
제호 : 경기헤럴드 / 주소: (15865) 경기도 군포시 산본로323번길 20-33 대원프라자 801호 / 발행인 : 임종호
편집인 : 임종호 / mail: ggherald@naver.com / Tel: 031-427-0785 / Fax : 031-427-1773
정기간행물 : 경기다01029(2007년 09월 17일) / 인터넷신문사업등록증 : 경기아 51770(2017년 12월 22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호
Copyright ⓒ 경기헤럴드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18,040
오늘 방문자 수 : 1,355
총 방문자 수 : 17,117,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