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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리 꽃과 에세이16> 비비추와 해피엔딩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2년 08월 16일
ⓒ 경기헤럴드




















논설위원·시인 박혜리

신라시대에 설녀라는 어여쁜 처녀와 설녀를 사랑하는 한 청년이 살았다. 청년은 설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설녀의 아버지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에 크게 근심하는 설녀의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청년이 설녀의 아버지 대신 참전하기를 자처하였다. 청년의 마음에 감동한 설녀는 청년이 돌아오면 혼인하기로 언약을 맺었다. 설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청년이 속히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6년의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만일 일반적인 꽃의 전설이었다면 청년을 기다리다 죽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집간 설녀의 슬픈 마음이 훗날 꽃이 되었다는 결말로 다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꽃 전설이 이처럼 슬프고 비극적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르다.
혼기를 놓칠까 걱정하던 설녀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설녀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 하였다. 그러자 설녀가 집 앞에 핀 꽃을 가리키며 이 꽃이 질 때까지만 기다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꽃은 오래 가지 못하기에 어머니와 친척들이 설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설녀의 간절한 마음이 닿은 걸까. 꽃이 여름내 피고 지기를 반복했고 3개월쯤 지나 꽃이 모두 질 무렵 청년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에서 설녀가 가리킨 집 앞 꽃이 비비추이고 이 이야기는 비비추의 전설이다. 비비추는 토양을 크게 가리지는 않지만 냇가 근처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실제로 여름날 개천변 근처 공원과 둘레길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냇가 근처를 걸을 때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한 보랏빛 꽃이 꽃대에 한쪽으로 치우쳐 피어오른 비비추꽃을 발견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꽃이 작아 보이지 않더라도 뿌리에서 돋아 비스듬히 널찍하게 퍼진 타원형의 넓고 짙으며 두꺼운 잎은 한눈에 들어온다. 잎이 꽤 화려하여 꽃 없이 잎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뽐내곤 한다.
토양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냇가 근처에서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 설녀네는 냇가 근처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데 큰 행운이 되었다. 만일 설녀가 가리킨 꽃이 비비추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이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꽃은 금방 지기에 피어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더욱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따지만 두 사람은 애초에 신이 정해 놓은 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시련을 이겨내고 이어지는 두 사람. 함께 사랑과 행복을 공유하며 끝날까지 살아갈 운명의 상대. 비비추는 그런 두 사람의 운명을 지켜준 것뿐일지도 모른다. 비비추의 꽃말은 좋은 소식, 하늘이 내린 인연, 신비로운 사람이다.
흔치 않게 해피엔딩인 전설을 가지고 있고 무척 좋은 꽃말을 가지고 있는 비비추는 자칫 고귀하고 귀한 꽃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비비추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냇가 근처뿐만 아니라 아파트 조경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더구나 거품이 나올 때까지 잎을 비벼 먹는다는 의미를 지닌 비비추의 이름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 예전부터 뜯어 먹던 나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으로 지부, 이밥취라고도 부른다.
뜨겁게 이글대기만 하던 여름도 말복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 끝나가는 여름을 추억하며 대표적인 여름꽃인 비비추의 전설과 꽃말처럼 올해 여름의 결말이, 올해의 결말이, 우리 인생의 결말이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본다.


박혜리 기자 / rumiya515@gmail.com입력 : 2022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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