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에세이> 남생이와 희소성 효과

‘남생이처럼 느릿느릿 가지만 끝은 본다.’는 속담이 있다. 거북이인 남생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함이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다. 남생이는 이처럼 속담뿐만 아니라 설화나 민화, 민요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만큼 예로부터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이다. ‘남생이’란 이름도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순우리말이다.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남생이란 이름은 바다거북과 구분하여 물가나 논 근처의 민물에서 사는 거북이를 가리키는 고유어가 되었다.
남생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작은 크기다. 흔한 외래종인 붉은귀거북이랑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등껍질은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빛을 띠며 3개의 등 줄무늬가 있다. 배부분은 노란색이나 밝은 회색이다. 꼬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네 다리는 물갈퀴가 있어 수영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육지에서는 느리지만 물속에서는 의외로 민첩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거북이처럼 남생이도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다. 서론에서 언급한 속담에서처럼 남생이는 빠르지 않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느려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한다. 느린 것과 연결되어 차분함과 평정의 상징이기도 하다. 헛된 욕심 없이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인다. 갖은 유혹이 넘쳐나고 욕망이 들끓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삶의 태도다.
친숙하고 꾸준하며 차분함의 상징인 남생이도 다른 고유종처럼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농경지 개발과 하천 정비 등으로 서식지가 파괴되고 약재, 식용, 애완동물 등의 목적으로 불법 포획되고 외래종인 붉은귀거북과의 경쟁에서 밀려 개체수가 감소하였다. 남생이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금호지에서 800만 마리가 넘는 남생이가 살고 있다. 금호지는 귀한 남생이의 국내 최대 서식지다. 그런데도 남생이의 보호 노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남생이가 산다는 안내판 몇 개가 전부다. 낚시도 가능하고 외래종 관리도 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금호지에 둔 통발에 걸려 15마리의 남생이가 폐사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친근하고 주변에서 자주 볼수록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못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학창 시절 동네에 있는 대학교를 아이들이 무시하곤 했다. 고3이 되어 선생님이 동네에 있는 대학교를 추천하면 대부분의 아이가 불쾌해했다. 굳이 다른 동네와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교 서열을 매기자면 오히려 동네에 있는 대학이 더 위인 경우도 많았다.
한국인들의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만큼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면서 배우기 쉽고 모든 소리를 다 적어낼 수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높은 수준의 글자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당연하게 한글을 사용하다 보니 한글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한글의 우수성에 관한 연구가 더 활발하다.
디자인적으로 크게 다른 건 없지만 리미티드 에디션 딱지가 붙으면 웃돈을 더 주어서라도 가지려고 한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현재 해외에서 매우 뜨거운 캐릭터가 있다. 아홉 개의 이빨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인 라부부는 매번 한정판으로만 판매한다. 어떻게든 라부부 캐릭터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정판 거래 플랫폼에 몰리고 있는데 그곳에서 라부부는 50배 리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무언가가 ‘희귀하다’고 느껴질수록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심리적 경향을 희소성 효과라고 부른다. 어떤 자원이나 기회가 희소하거나 제한적이라고 인식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더 매력적이고 가치 있게 느낀다. 하지만 이건 편견에서 비롯된 자기 제한적 믿음에 불과하다. 가치는 희소성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을수록 더 소중할 수 있다. 누구보다 우리 가족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너무 당연해 인식조차 하지 않는 공기처럼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남생이가 가까이에 있어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등한시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