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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업가로 사회환원에 모범을 보인 조장희 대표이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29일
ⓒ 경기헤럴드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 할 때는 후회가 없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성공자는 축하를 실패자는 격려를 아낌없이 받는다. 어려서 가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학업도 포기하면서 사업에 성공한 조장희 대표이사. 그는 젊은 사업가로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이웃에게 환원하는 기업가로서 찬사를 받고 있다.

젊은 나이에 사회에 도전하다.
수리산과 삼막사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안양시가 그의 고향이다. 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옳고 곧게 성장했다. 평범한 회사원인 부친으로부터 성실과 근면을 배웠고, 없는 살림에 자식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을 승화하는 모친에게서는 책임감을 익혔다.
그가 태어날 때 극도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단칸방에 네 식구가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삶인지 어린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모친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늦게 오시면 형제들은 엄마 어깨를 주물러 드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간혹 그와 동생이 고기와 과일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 하면 모친은 정육점에서 지방 옆에 붙어 있는 고기와 상품성이 없는 과일을 저렴하게 구입, 자녀들의 요구를 채워주며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모친이 늦게 들어오시는 날에는 어린 그가 동생의 식사를 챙기며 늦은 밤에 연탄불까지 가는 등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 군포에서 학교를 다녔다. 축구와 야구에 소질이 많았던 그는 또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상급반일 때 연속으로 부반장을 하며 행복한 학급만들기에 최선을 다 했다. 같은 반 아이 중에 신경성질환을 겪는 친구를 위해 1학기 동안 등교와 하교를 도와주었고 친구들과 함께 독서장려에 기여하기도 했다.
학급에서도 또래들이 대충 해 놓고 간 청소도 남아서 마무리까지 하여 그의 교실은 언제나 청결하고 깨끗했다. 특히 집에서 가지고 놀만한 장남감이 없어 모친이 사다 준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아 천성이 착한 아이로 주위에서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마음 한 구석에 위축감이 있었다.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같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것. 모친은 그런 생각을 하는 그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환경이 모친을 더 강하게 여장부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다. 서울은 너무나 낯설었다. 전학생으로 텃새의 설움도 받았다. 한 친구가 왕따를 당하는 것을 보고 그 친구를 위로해 주다 오히려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학교가 싫었고 졸업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방황까지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진솔한 그의 마음에 끌린 친구들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그로인해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장애인직업학교에 방학 기간 중 2주 정도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장애인가족들의 애환을 직접 체험하고 봉사의 즐거움을 갖게 됐다. 이때 동질감을 인지한 덕분에 사업가로 성공한 후에 사회환원의 덕목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다.
2학년 때 총학생회 체육부장으로 선임되어 선배들과 봉사활동을 실시하기도 했고 학교운영회의 때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정리하여 학교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력도 보여주었다.
봉사활동과 건전한 학생회 활동을 기반으로 모범적인 고등학교를 보내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경제적으로 대학까지 갈 수 있는 여건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빨리 사회에 진출하여 집안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모친이 당시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모친을 도우며 사업을 전개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모친에게 자신의 뜻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나 처음에는 극구 반대하셨다. 후에 모친과 상관없는 독자적인 사업을 하라는 권유를 받아들이고 사회에 진출했다.
막상 나오니 할 것이 없었다. 회사에 취업을 하려면 기술을 요구해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서빙뿐이었다. 호프집이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조건 저축을 했다. 짧은 1년 동안이지만 절실히 느낀 것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명제였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모아 둔 700만원을 모친에게 드리고 입대를 했다.
군에 입대를 해도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모친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이 있으면 큰 위안이 되었는데 그마저 군에 왔으니 모친의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무사히 전역을 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에게 갈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의 짧은 생활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성실한 그에게 행복이 다가왔다. 미국에 있는 한 대학에서 입학이 허락,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어가 부족하여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한인 교회에 나가 바이블스터디에 가입하여 부족한 영어를 익혀 나갔다. 한 교회로는 부족하여 두 개의 교회를 나가면서 영어가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영어에 자신이 생긴 그는 한인마케팅 동아리를 구성하여 초대부회장을 맡아 회원 확보에 열중했다. 지금은 약 30명으로 늘어나 유명한 동아리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가 대학교 재학시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이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그곳으로 달려가 2주 동안 집짓기 현장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참담한 주민들을 위해 녹초가 되도록 봉사를 하면서 한국인의 따뜻한 사랑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몸은 미국에 있어도 마음은 늘 모친이 있는 한국에 가 있었다. 공부 중에 모친이 아프다는 소식만 들으면 좌불안석이 되어 늘 눈시울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미국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그리운 조국에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취업을 준비했다. 다행히 롯데면세점에 응시하여 좋은 결과가 있었지만 모친이 급속도로 허약해지는 바람에 모친의 사업을 보조하게 됐다. 처음에는 식재료를 담당했다. 좋은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농수산물시장에 새벽 5시까지는 가야했다. 밤늦게 귀가를 하고 새벽에 출근해야 함에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은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에 모친은 감동하기 시작했다.
모친의 사업장을 애용하는 손님들로부터 음식의 청결과 신선도가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자 모친은 그를 더 신뢰하게 됐다. 모친은 5년이 지나서 사업의 노하우를 그에게 전수하며 새로운 사업장을 그에게 맡기게 됐다. 바로 안양시에서 유명한 프리미엄 뷔페이다. 마벨리아를 오픈하자 짧은 시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젊은 사업가로 존경을 받다.
회사나 단체에서 미팅과 회식을 가장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해 놓았다. 직원들에게는 몸에 밴 친절을 요구했고 직원들도 자신의 회사처럼 친절과 격조 높은 서비스로 손님들을 만족해 주었다.
그는 사업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JS 강남웨딩문화원 대표이사, (주)더 이스턴 하우스 대표이사, (주)뉴 힐탑 웨딩 대표이사 등을 맡아 젊은 사업가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여러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해도 각 사업장마다 책임자들이 자신의 일처럼 완벽하게 운영하여 직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고 한다.
시민들로부터 받은 사랑만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2013년 안양시 31개동에 매달 순회하면서 쌀 1,000kg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 동에 전달하는 일이 쉬운 줄 알았다. 그러나 배달 자체에 어려움이 있어 사회복지를 전문으로 하는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에 일괄적으로 전달하게 됐다. 안양시사회복지협의회는 군포⋅안양⋅의왕지역을 모두 관장하여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게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또한 중소기업청에서 실시하는 가업승계협의회 회원으로 위촉되어 1년에 2회씩 회원들과 주기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사랑의 쌀을 착한푸드마켓 1호점, 2호점, 무료급식소, 다음세대희망, 일시청소년쉼터 민들레뜨락, 의왕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경기남부아동일시보호소 등 수많은 사회복지시설과 소외계층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안양시 제5회 기부의 날 기념 ‘기부축제’에서는 후원사로 동참하여 선행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에 단칸방에서 힘들게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어떠한 어려움도 지혜와 슬기로 해결해 가신 모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위인전에 나오는 위인 이상으로 강인한 모성애를 몸소 보여주셨고 책임감과 사회환원이라는 철학을 심어준 모친의 삶을 늘 본받고 생활한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인내하며 참을 수 있는 인성을 갖추라고 조언해 주고 있다. 누구나 학창시절 또래로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우발적으로 생기는 일로 인해 자신의 인생에 멍에를 줄 수 있어도 참고 감내할 때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된다며 자신의 경험을 일러주었다.
아무리 힘든 역경이라도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 준 모친과 가족 그리고 회사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한다. 친구들이 대학을 다닐 때 자신은 아르바이트로 생계에 도움을 주면서 미래를 설계한 그의 뚝심은 오늘의 청소년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또한 젊은 사업가가 일찍이 회사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자세는 기성세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약력
미시간 주립 대학교 졸업(Michigan State University)
동행의릴레이 이사
한인마케팅동아리 부회장 역임
(주)JS 강남웨딩문화원 대표이사
(주)마벨리에 대표이사
(주)더 이스턴 하우스 대표이사
(주)뉴 힐탑 웨딩 대표이사
중소기업청 가업계승회원
경기도의회 의장 표창장
안양시장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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