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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과 이론을 겸비하며 이웃사랑의 롤모델 신태식 교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22일
ⓒ 경기헤럴드


세상을 불평하며 자신을 자박하는 사람은 어떠한 자리에 있어도 만족하지 않는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의 미래를 전개한 신태식 교수. 그는 가난으로 인해 절약과 검소가 몸에 배었고 이웃과 함께 하려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가난이 지혜를 주다.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곳 용암사와 둔주봉 한반도 지형으로 널리 알려진 충북 옥천군이 그의 고향이다.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국가관이 투철한 조부와 부친으로 인해 어렵게 성장했다. 조부는 판사, 작은 조부는 국회의원, 부친은 직업군인으로 근무하다 야당정치인으로 힘들고 청빈한 삶을 영위하는 바람에 신교수의 삶 역시 또래들에 비해 순탄하지 않았다. 부친은 6.25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중대장으로 전역했으며 국가 축구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스포츠의 저변확대에 일조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할 때 부정한 돈을 받지 말라며 월급날이면 직장으로 찾아와 생활비를 놓고 가신 부친의 영향을 받아 부정부패를 멀리하는 청백리로 생활할 수 있었다.
모친은 수간호사 출신으로 부친의 정치활동으로 인해 극빈한 생활을 하면서도 주변의 환자를 주야로 간호하여 백의 천사로 찬사를 받으셨다. 특히 불광동 독바위골 화전민촌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동네 환자들에게 주야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병간호를 하셨고, 항상 모친의 옆에는 어두운 밤길을 지키며 장남인 신교수가 함께 동행 하였다. 그는 대전에서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부친을 찾아 서울로 전학 갈 때를 잊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작별인사를 마친 그에게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교사 당직실에 가있으라고 불렀다. 늦은 시간 선생님이 왜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실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있던 중, 담임선생님은 따듯한 김이 모락거리는 옥수수 죽을 한 그릇 가득 주시면서 “이놈 다 먹고 가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곤 한다. 배가 너무나 고팠던 시절이라 그 죽 한 그릇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이별선물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은 아마도 그때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중학교 3학년 때에는 10리길을 걸어서 통학하며 영양결핍으로 인해 어린나이에 류마티스관절염까지 걸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됐다. 그가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도 부족한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바람에 그는 한 단계 낮춰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전교 7등으로 입학했지만 사춘기와 함께 온 가난은 그의 마음속에 사회적 반항심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역도부에 가입, 밤낮으로 운동에 몰두하였고 공부는 등한시 되었다. 고3이 돼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부를 하여 해군사관학교에 합격을 했다. 그러나 부친이 정치활동으로 인해 구속되자 해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조부처럼 법조인이 되겠다고 부친께 약속하고 재수를 했다. 조부는 시골인 옥천에서 일제시대에 경성법전을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를 역임했던 수재였고 많은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법조인이였다.

현장 중심의 최고 전문가가 되다.
그러나 가난은 다른 또래들이 유명 학원을 다니며 준비하는 입시를 독서실에서 청소하며 스스로 공부해야 했으며, 커 가는 동생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상업고로 진학하는 등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현실은 더욱 막막하기만 했다. 재수에 실패하고 삼수를 해야만 하던 1976년 어느날 그토록 아름답고 동네사람들로부터 칭송받던 모친이 위암판정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랑스런 자식이 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너지는 절망 속에 며칠을 고민하다 하루빨리 돈을 벌어 모친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다행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였지만 이미 모친은 영면하신 뒤였다.
공무원이 된 후 우연히 수원역 앞 전통시장인 매산시장에서 아이들이 연탄을 넣어 만든 야외 온돌에서 업드려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 야채 파는 엄마 옆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고 자신도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한 아픈 기억이 있기에, 그는 무료로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지도해 주기 시작했고, 교육열이 대단한 시장 엄마들이 여기저기 우리애도 좀 봐달라며 청하면 예전에 과외지도를 했던 경험을 살려 열심히 지도해주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 자신을 잠시나마 행복하게 해 준 유일한 보람있는 일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자식 결혼식을 해야 하는데 식을 올리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고민 끝에 경기도청과 상의하여 무료로 여성회관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자신이 모시는 농업기술연구소 소장님을 주례로 모시고 본인은 결혼식 사회자로 나서 결혼식을 마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시 소장님은 1급 공무원이었으며 바쁘신 가운데에도 그의 부탁에 기꺼이 주례봉사를 해 주시곤 하였고 결국은 본인의 결혼식 주례까지 하시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87년 6.29선언이 있고 여기저기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특별히 노사분규를 지켜보면서 어려운 환경과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을 위해 일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용노동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1988년 1월부터 경기지방노동위원회 심사관으로 근무하면서 경기일대의 수많은 노사분규를 해결하고 부당노동행위를 판정하는 일을 하였으며,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할 때에는 열악한 노동자들을 대변해 주겠다는 의지로 노동현장을 누비며 정신없는 일과를 보냈다. 그러던 중 1992년 고용노동부의 국비위탁교육 장학생 2명 중에 그가 선발되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고 바쁜 일과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드디어 14년 만에 박사를 취득할 수 있었다. 사회보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에서 산업재해보상론과 방지론을 강의하면서 형설출판사의 협조로 전문도서를 출판할 수 있었으며, 2007년에는 고용노동부 인가 사단법인 한국산업재해보상보험학회를 발족하여 지금까지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였고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는 등 산업안전과 보상에 대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9년 근로복지공단으로 자리를 옮긴 후 산재보험연구원장 시절에는 국제기구인 산재보험 아시안포럼의 국제학술대회 초대 좌장을 하였으며, 기획조정본부장 시절에는 만성적자로 허덕이던 당시 산재의료원을 근로복지공단에 통합하는 추진단장을 맡았고, 이러한 산재의료기관과의 인연으로 결국 2016년 1월에는 3,300여 병상의 전국 10개 근로복지공단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이사로 근무하면서 50여개의 새로운 재활의료수가를 개발하여 근로복지공단 병원을 안정적인 재정수지 균형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 장본인이다.

지역을 초월한 봉사를 전개하다.
2018년 3월에 근로복지공단 임원을 사직을 하고 한세대학교 사회보험전공 경영학 석박사과정을 개설해 늦은 나이에 보건융합대학원 전임교수로 임명되면서 후학양성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2005년에 그룹사운드를 결성하여 교도소, 소년원, 병원 등을 순회하는 드림콘서트를 열며 소외된 분들을 위로하여 왔으며,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KBS근로자문화예술대상시상식 때 어린이합창단 ‘웰코 엔젤스’를 스스로 결성하여 밴드그룹과 특별출연을 하기도 했다.
음악만이 아닌 다양한 재능기부를 통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2014년에 K-WACO 한국근로문화예술봉사단을 공식적으로 발족한 그는 매년 소년원, 양로원, 병원 등을 순회하면서 중식제공, 음악 콘서트, 등 다양한 복합 봉사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2015년부터 지금까지 5회에 걸쳐 해외봉사단을 결성하여 다녀왔으며 이들은 드림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의 시골마을을 방문하여 음악과 의료봉사, 헤어미용봉사, 떡볶기 등 특식제공, 의류, 학용품, 노트북컴퓨터를 지원하는 봉사를 전개하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때에는 주최측으로부터 성화봉송주자(인천)로 추천이 되어 동참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으며 대전지역본부장 시절에는 대전일보 경제칼럼 기고, TJB 뉴스출연, 대전 SBS 매거진 오늘의 명사로 선정되는 등 언론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모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모친으로부터 봉사정신을 배웠다고 한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웃에 환자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자신의 가족처럼 섬기는 모친의 모습에서 사랑과 섬김을 익히고 실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미래를 위해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조언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한 번도 미래를 포기한 적이 없는 그였기에 오늘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시작한 그는 공직에서 청백리로, 대학에서는 현장중심의 전문가로, 사회에서는 봉사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도 봉사할 것이 많다는 그는 자신의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전수해 주고 는 KSP(Korea knowledge Sharing Program)정책의 일원으로 노후를 봉사하고 싶다고 한다.


약력
충북 옥천군 출생
충북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충북대학교 경영학 박사학위 취득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역임
뉴시스헬스, 코리아헤럴드, 세계일보 논설위원 역임
지방노동위원회 심사관, 공익위원 역임
근로복지공단 비서실장, 기획조정본부장
근로복지공단 재활의료이사, 의료복지이사 역임
사단법인 아시아문예진흥원 재능기부봉사 단장
사단법인 한국인적자원개발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산재보험학회 수석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
한국근로문화예술봉사단 단장
국무총리 모범공무원 표창
한세대학교 보건융합대학원 전공교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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