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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보다 이타정신으로 봉사하며 행복을 주는 김나희 가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10일
ⓒ 경기헤럴드


이름보다 실질적인 봉사로 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들은 친근하고 정감이 많다. 어릴 때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늦게 가수에 데뷔, 소외된 가족을 찾아 노래로 희망을 주는 김나희 가수. 학창시절에는 노래 잘 한다고 칭찬을 받으며 꿈을 꾸었지만 부모님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어도 부모님을 존경하며 어르신 섬김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팔방미녀의 꼬마가수로 인정받다.
충청도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인 대전광역시가 그녀의 고향이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내리 사랑자체였다. 부친은 인쇄소를 하며 경제적으로 매우 여유가 있어 어려운 이웃이나 힘든 가정을 보면 도와주는 애민사상이 강하셨다. 자식들에게는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며 책임지도록 개방적인 사고를 심어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모친은 부친에 비해 매우 엄해 말대꾸도 하지 못했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딸과 같이 대해 칭송이 자자했고 동네일이라면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는 열성적인 인품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곧장 따라 불러 동네 분들로부터 나중에 가수하라고 격려를 받을 정도였다. 부친이 늦게 들어오시면 우리 막내 딸 노래 한 곡 불러봐 하며 그녀의 노래는 가족에게 행복과 기쁨을 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합창반에 들어가 정식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몇 배 이상으로 노력하여 합창반에서도 두각을 보여주었고 여러 대회에 참가하여 단체상을 받기도 했다. 예능에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급에서 연극과 오락부장을 하며 인기가 매우 많았다. 학교 운동회와 소풍날에는 그녀의 무대였다. 친구들이 김나희! 김나희! 외치며 그녀의 노래를 듣기 원했다. 그녀는 가수가 된 마음으로 동요와 가요를 부르며 친구들의 우상이 되었다.
운동에도 뛰어난 그녀는 육상부에 선발되어 육상선수로 출전도 하였다.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입상도 하며 팔방미인으로 알려져도 노래가 최고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 청소부터 해 놓은 다음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적으며 가사를 외웠다.
어린 나이에 노래책이 있는 줄 몰랐다. 공책에 적어 놓은 곡만 수백곡이었다. 몇 번 따라 부르면 다 외워진다는 그녀는 모르는 노래가 없었다. 친구사이에서 리더십도 강한 그녀는 어려운 친구를 보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부친으로부터 받은 용돈의 일부를 친구에게 주기도 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 같이 식사하기, 소풍이나 운동회 때 친구의 도시락도 준비하는 등 어른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정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여전히 합창단에 들어가 가수의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때처럼 대회에 나가 단체상을 받으며 그녀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녀는 합창단원활동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꿈을 상실하다.
대전시에 있는 고려극장에서 열린 노래자랑에 참가하여 1등을 차지했다. 1등은 연말결승에 진출하는 자격증을 주는데 모친이 사실을 알고 자격증을 찢어버리고 말았다. 당시 가수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 웬만한 가정에서는 반대를 하던 시절이었다. 자격증이 찢어지는 모습을 본 그녀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무서운 모친에게 뭐라 항변도 못해 며칠을 울며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학급에서 명랑하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그녀는 오락부장을 맡아 행사 때마다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또래들이 싸우거나 다투면 해결사 역할을 잘 해 친구들 사이에 신뢰가 컸다. 또한 자신보다 힘든 또래와는 용돈을 나눠 쓰면서 이탈되지 않도록 격려를 해 주는 좋은 친구, 동네 주민들에게는 예의바르고 성실한 학생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그녀의 삶이 바뀌게 되었다. 대학을 준비하기 위해 또래들과 멀리했던 그녀는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공부하는 것에 재미가 있어 따돌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갈수록 견디기 어렵게 되자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하고 말았다.
집이나 동네에서 착하고 순하다고 소문난 그녀였지만 같이 어울린 친구들에 의해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자퇴를 하고 가수의 길로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하던 중에 인천에서 양장점을 하는 언니가 디자인공부를 권유하여 고향을 떠나게 됐다.
양장점에서 디자인을 언니로부터 직접 사사받으며 디자인에 눈을 뜨게 됐다. 양장점에는 유명 모델들이 나온 잡지들이 많아 일이 끝나면 늦은 밤까지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기술을 터득해 나갔다. 언니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녀는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양장점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라디오나 녹음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유행가나 지나간 옛노래를 따라 부르면 직원들의 가수로 데뷔하라는 소리를 수없이 들으며 가수의 꿈을 놓지 았았다. 그러나 가수를 준비하던 중에 부모님이 결혼을 하라며 성화를 보내 결국 결혼을 하고 말았다.
모두 어렵게 생활하던 시기라 그녀도 집에서 주부로만 있을 수가 없어 생활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요리 솜씨가 좋은 그녀는 인천에 살림을 차리고 식당을 오픈했다. 짧은 시간에 유명식당으로 알려져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자 경로당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등 선의의 활동도 전개했다.
당시 평촌이 개발이 되어 안양이 생활하기 좋다는 남편의 제의로 인천식당을 처분하고 안양에 다시 식당을 열었다. 인천에서 안양으로 이사 올 즈음 지역 주민들이 이사를 가지 말라고 울면서 그녀에게 이야기 했지만 남편의 뜻을 꺾지 못했다.
안양에서의 식당도 매우 잘되어 사회활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한 지인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나서 서울에 있는 가수협회 남인수 회장을 소개해 주었다. 남인수 회장은 그녀를 인정하여 가수협회에 가입, 그녀는 가수의 길을 시작했다. 안양식당을 처분하고 가수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식 곡을 받지 못해 남의 노래로 활동하면서 재능기부에 동참했다.
서울의 한 노인정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초대가수로 여자의 일생을 처음으로 무대에서 불렀다. 반응이 너무 좋아 곧 곡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녀에게 행운은 오지 않았다. 몇 년간 무명가수로 의욕을 상실하고 있을 때 한 지인이 가수가 꼭 유명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나희 가수의 노래를 듣고 행복과 기쁨을 얻으면 명성은 없어도 그 의미는 매우 크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가수로 나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의왕시 노인회, 안산중앙병원. 의정부 불우이웃돕기행사, 서울교도소, 의왕구치소, 성심요양원, 서울 독거노인위문잔치, 장애인가족위문공연, 의정부 추석맞이 불우이웃돕기 등 재능기부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노래로 봉사활동을 할 수 없으면 안양시 무료급식봉사활동, 군포10단지 아파트단지 급식봉사, 여러 복지관에서 급식봉사 및 환경정리 봉사에 임했다.
구정 때는 떡을 마련하여 제공하기도 했고 이벤트행사를 맡아 얻은 수익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아낌없이 주었다.
고향을 떠나 온 그녀는 늘 고향이 그리웠다. 고향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어 초등학교 동창회를 직접 만들어 활성화하는데 기여했으며 모교사랑운동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한 독거노인이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비가 없다는 소식을 듣자 직접 입원과 병원비를 대납해주기도 했고 보상금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하는 딸의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수학여행을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학여행비와 용돈을 주는 등 이타정신이 매우 강했다.
그녀가 많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광명시 가요경연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광명시 시민회관 분수대에서 공연하면서 광명시 노래자랑에 기여, 그녀는 초대가수로, 광명시 가수협회 부지부장으로 위촉받아 활동을 전개했다.
그녀의 열성적인 활동이 인정이 되어 군포시 가수협회 회장을 맡은 행복한 공동체만들기에 헌신하고 있으며 지역가수들의 권익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 외에도 안양충청향우회와 군포충청향우회 여성봉사단 활동, 이웃사랑예술단 이사, 녹색환경운동본부 복지부장, 소년중앙일보 연예저널 전속가수, 대한일보 연예분과 위원 등을 맡아 모범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도 경기도신체장애인협회 안양시지부 후원회 이사, 군포시시각장애인협회 후원회 이사, 수리청소년문학대전추진위원 등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국가재건을 위해 자신을 바친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비록 민주주의에 오점은 있지만 먹고 살기 힘든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정신을 높이 사고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미래는 자신의 것이다” 며 오직 자신의 재능을 살려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되라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일러주었다.
모친이 조금만이라도 가수가 되게 도와주었더라면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이 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품고 있는 그녀다. 가슴은 뜨겁게 눈물을 흘렸지만 부모님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효녀이다.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개발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그 꿈은 실현된다는 신념으로 가수활동에 전념하는 김나희 가수. 그녀는 가장 어려운 소외계층에게 용기를 주며 행복과 기쁨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늦게 시작한 가수지만 그 열성과 정열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며 명성보다 공동체의식을 마음속 깊게 심어주고 있어 어느 곳에서나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한다.

약력
대전광역시 출생
이웃사랑예술단 이사
녹생환경운동본부 복지부장 역임
한국가수협회 회원
경기도신체장애인협회 안양시지부 후원회 이사
군포시시각장애인협회 후원회 이사
소년중앙일보 연예저널 전속가수 역임
대한일보 연예분과 위원 역임
한국가수군포시지부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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