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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의 전도사로 이웃을 따뜻하게 하는 이병희 군포경찰서 전 경우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05일
ⓒ 경기헤럴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형성되는데 그 유지가 매우 어렵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칭찬만한 것이 없다. 경찰공무원으로서 평생 시민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퇴임 후에도 재능봉사로 남은 삶을 영위하는 전 군포경찰서 이병희 경우회장. 그는 칭찬이 생활화 되어 언제나 웃는 마음으로 이웃을 편하게 대해준다.

학생농부로 생활하다.
남사당패와 유기로 유명한 경기도 안성시가 그의 고향이다.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자수성가로 많은 농토를 일궈낸 부친의 덕분에 배곯지 않으며 성장했다. 부친은 배운 것은 많지 않아도 성실하고 근면하여 동네에서 일만 하는 사람으로 불릴 정도로 순수하고 고지식했다.
부친은 마라톤을 잘하셔 지역대회에 출전, 많은 입상을 했다. 그 영향을 받았는지 그는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잘했다. 모친은 가족만 아는 현모양처였다. 집안의 애경사와 가족들 뒷바라지는 언제나 모친의 몫이었다.
어려서부터 부지런했던 그는 부친을 따라 새벽 달리기로 심신을 단련했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에는 또래들과 노는 것보다 밭에 나가 일손을 돕는 것이 일상이었다. 또한 집안에서 많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가축을 같이 키웠다.
그래서 밭일이 끝나면 소꼴베기와 여물주기 등 그는 어린 나이에 벅찬 일들도 묵묵히 잘 해 효자아들이라고 칭찬을 받곤 했다. 그런 환경적요인은 그에게 자연히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자신의 꿈도 농업관련한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집안일을 더 많이 했다. 초등학교 때는 어려서 원두막의 참외와 수박을 지키기 어려웠지만 덩치가 커진 중학교 재학 중에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더욱이 장마가 지는 날에는 밤늦게까지 정리하느라고 녹초가 되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집안일을 물려받기 위해 농업고등학교 원예과로 진학을 했다. 다른 또래보다 농사에 익숙하여 그는 수업에 월등히 앞서갔다. 학교에서 배운 과수원 재배 기술로 직접 과수원을 만들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과수원을 직접 만든다는 자체는 그 당시 염두도 못내는 시절이었다.
심은 과목들이 성장할 때면 직접 전지와 적과를 하며 미래의 농부로 성장했다. 특히 그가 재배한 신고배는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더욱이 농약과 비료가 부족한 시절이라 집안의 많은 채소밭에 인분을 뿌리는 일을 아침 일찍부터 부친과 함께 작업하고 등교하는 등 가장 모범적인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일에 파묻혀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외지로 유학을 가면 농사일을 부친 홀로 해야 하기에 그는 안성에 있는 전문대학 축산과로 진학을 했다. 과수와 축산을 병행하여 농부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로 진학한 그는 집안일에 더 많은 사간을 할애하며 대학시절을 학생농부로 만족해야 했다.

경찰에 투신하다.
남들보다 빠르게 사업을 하고 싶어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휴가를 나와도 여행보다 과수와 축산 일을 거두는 등 집안일을 게으르게 할 수가 없었다. 전역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군대에서 미래에 대한 사고가 변했다. 농업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으로 안정된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해 경찰시험을 준비했다.
처음 응시한 시험에서 당당히 합격한 그는 고향 안성경찰서에 첫 근무지로 발령받았다. 집안과 동네 사람들은 경찰공무원이 나왔다고 모두 축하해 주며 그의 앞날에 축복을 전해주었다.
안성에서 태어나 성장한 곳이라 누구보다도 지리에 유리했다. 그는 구석구석 돌며 주민들의 치안에 만전을 기했다. 발령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달이 금방 지나갔다. 상급자가 그를 호출하며 첫 급여봉투를 주었다.
그는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에게 모두 드리는 그런 착한 아들이었다, 정든 고향에서 근무하다 의정부경찰서로 전출되었다. 의정부는 안성보다 치안이 열악했다.
한번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는데 긴급전화가 와 그는 야간임에도 불구하고 홀로 사건현장으로 달려갔다. 워커힐 부근의 산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해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초년 경찰관으로서 사명감이 컸던 그는 가족을 찾아주기 위한 일념으로 주위에 재수사를 진행했다. 다행히 50m 떨어진 곳에 해골을 발견했고 그 주위에서 구두 한 컬레와 수첩을 찾아내는 쾌거를 얻었다. 수첩안에 적힌 이름과 전화를 일일이 확인하며 시체를 가족들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사건은 미궁으로 빠질 뻔했다.
또한 의정부경찰서 남양주조안지서 근무하면서 연세중학교 300명 학생들에게 태권도공인4단으로서 1년 이상 지도했고 산불이 나서 학생들과 산불을 진화하는 등 학교와 학생 주민들과 경찰이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조선일보에 기재되기도 했다.
그가 구리지소에서 근무할 때 김00 사건이 터졌다. 홀로 출두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서 급히 출동해 보니 마당에 머리가 터져 사망한 사람이 있었고 방에는 어린 아이가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의 긴급한 후송조치와 함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하는데 일조한 순간은 지금도 기억에서 멀지않다고 한다.
다시 그는 안양경찰서 형사계로 발령받았다. 안양은 고향 안성과도 인접해 있어 그가 근무하기에는 너무나 좋았다. 그가 야간 당직을 서고 있는데 귀인동 택시강도사건이 발생했었다. 그는 동료들과 사건해결에 현저한 공로가 인정되어 1계급 특진했다.
다시 그는 인근 과천경찰서 정보과로 전보, 정보습득을 위해 다양한 계층과 단체를 접촉했다. 인상이 좋고 신뢰가 있는 그에게 많은 시민들이 우호적이었다. 시민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해결해 주기도 하고 슬픔이 있으면 같이 슬퍼해 주는 등 인간미가 넘치도록 동행했다.
그런데 서울외고간순환도로의 설계변경으로 인하여 의왕시민들이 3년 동안 투쟁에 동참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사가 그의 고향분이라 대화가 용이했다. 그는 오랜 설득 끝에 해결의 물꼬를 트게 해주었고 시민들의 투쟁도 종료되게 하는데 일조했다.
또한 의왕콘테이너 파업으로 노사분규가 매우 심각할 때 그는 정보원으로 노사의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주동자들의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등 사건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그는 인간적으로 노사를 설득하여 원만한 타협이 되도록 중재를 서기도 했고 군포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도 노사분류를 잘 해주는 해결사 별명을 얻기도 했다.

대민봉사에 만전을 기하다.
그가 근무할 때는 의왕시에 경찰서가 없어 부곡파출소는 군포경찰서 관할이었다. 부곡지역은 우범지역으로 불량한 청소년들이 군집하여 동네사람들도 야간에 다니기 겁이 날 정도였다. 안양시와 수원시에 내놓라하는 불량서클에 가입한 청년들이 모여 언제나 불안이 가중되었다. 경찰도 근무를 기피하는 곳이라 그는 막막했다.
부곡파출소장으로서 소탕을 하고 싶었지만 인력이 너무나 부족했다, 부곡은 면적도 넓고 순찰 돌 차량도 없어 도보로 순찰해야 하는 악조건이었다. 이에 여성방범대를 전국최초로 약 30명의 구성원으로 조직하여 민간중심의 순찰을 돌게 했다. 더불어 의왕시 사회단체 회원 700여명에게도 동참을 호소, 매일 조별로 순찰하며 청년들을 설득했다. 그의 기획이 맞았는지 청년들은 하나 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으로 부곡파출소는 경기도파출소 실적1위를 차지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 냈다. 그 공로로 경기도경찰청장 표창장을 받은 그는 언제나 시민의 안전이라며 겸손해 했다. 이외에도 팔당 댐 익사 자살사건, 경춘 국도 5명 사망사건, 안양 모병윈에 폭파 공갈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몸담고 있었던 경찰도 나이가 들자 정년이 다가왔다. 그는 군포경찰서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퇴직후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근무하면서 형법은 어느 정도 알지만 민법에 대해서는 부족했다. 그래서 3년간 민법공부에 매진, 형법과 민법에 관한 재능기부를 할 수 있어 봉사에 임하고 있다. 그의 소문이 지역을 넘어 많은 곳에서 널리 알려지자 자문을 받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일체의 비용도 받지 않고 무료로 상담과 민원서류를 대신해주곤 했다.
어느 사건은 7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변호사들이 찾아내지 못한 부분을 그가 찾아내서 승소하는데 크게 도움을 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대민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군포경찰서 경우회에서 회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흔쾌히 회장을 수락하고 교통계몽운동, 방범활동, 아동지킴이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안전한 군포만들기에도 10년 동안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배고픔보다 괴로운 것이 없는 시절에 국민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 헌신한 박 대통령을 존경하며 그의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공직생활에 임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칭찬하는 마음을 가져라 일러주고 있다. 상대방에게 칭찬을 해 준다는 것은 과정과 결과를 모두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인정하는 문화, 수용하는 문화를 많이 익히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향 안성에서 청년농부로 미래를 꿈꾸며 농업에 관심을 두었지만 공업화로 농업이 장래의 희망이 없자 경찰공무원에 투신하여 대민봉사의 모델이 된 그는 언제나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많은 사건과 노사분쟁을 해결하기도 하고 조정하며 해결사의 별칭을 얻을 정도로 신뢰를 받았다. 정년퇴임 후에는 재능기부로 따뜻한 공동체만들기에 앞장서는 그의 행보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약력
경기도 안성시 출생
안성농업전문대학 졸업
태권도 공인4단
의정부경찰서 근무
안양경찰서 형사계 근무
과천경찰서 정보과 근무
군포경찰서 정보과 근무
안양경찰서장 표창장
과천경찰서장 표창장
군포경찰서장 표창장
경기경찰청장 표장장
내무부장관 표창장
군포경찰서 경우회 회장역임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9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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