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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희망을 만들어 주고 있는 가수 송채미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01일
ⓒ 경기헤럴드


꿈은 언제나 사람에게 희망과 삶의 근원을 제공해 준다. 어려서 노래가 좋아 노래밖에 몰랐던 그녀는 중년이 돼서야 다시 그 꿈을 향해 뛰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음악이지만 노래로 삶의 의미를 찾고 이웃과 함께 하고 있는 가수 송채미. 그녀는 요양병원과 사회복지시설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고 있다.

남아선호사상으로 눈물을 흘리다.
잣과 유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경기도 가평군이 그녀의 고향이다.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친 덕분에 큰 고생 없이 성장했다. 그 당시 모두 어려운 시기라 긴급한 돈이 필요하면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부친을 찾곤 했다. 부친은 못 받을 각오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부탁을 하면 언제든지 건네주어 인심을 후하게 얻었다.
늘 조용하고 책임감이 강한 부친은 자식들의 교육에 있어 차별이 심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부친은 아들 중심의 교육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의 모친은 딸들을 보면 아픈 마음을 삭혀야 했다.
또래보다 힘이 장사인 그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장부였다. 남자 또래들과 팔씨름을 해도 져본 적이 없었고 상급생에게도 이기는 등 동네에서도 힘이 센 아이로 통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노래를 잘 한 그녀는 학교의 합창반 노래연습이 가장 즐거웠다. 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으면 연극도 노래도 주로 주인공을 많이 하여 자신의 끼를 발산했다. 더욱이 친척이 서울에 있어 서울에 다녀오면 동네 친구들과 사람들이 그녀의 집에 순식간에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서울 친척이 과자와 학용품 등 여러 선물로 또래들과 동네 분들에게 나눠주는 등 온정이 가득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곧장 오면 집안의 일거리를 도맡아 했다. 불을 때어 밥하는 시기라 매운 연기도 마다하고 저녁준비는 늘 그녀의 몫이었고 반찬도 맛깔나게 잘 해 칭찬이 자자했다. 더욱이 집안의 빨래와 청소는 말할 것도 없이 너무 깔끔하게 잘 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녀는 공부보다 노래에 빠졌다. 집에서도 공부하라는 말 대신 오빠들 공부하는데 도움을 주라는 식으로 훈육을 받다보니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꾸중이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오신 작은 아버지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가사를 적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휴대용 라디오를 한 대 사주고 가셨다. 그녀는 학교 갈 때나 올 때나 항상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잃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기억을 잘 하지 못해도 노래만큼은 그녀를 따라올 친구가 없었다. 라디오에서 한 번 들은 노래는 거의 암기를 하는 등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학교 체육대회와 소풍이 있는 날은 그녀가 가장 행복한 무대였다. 그녀가 조용히 있어도 친구들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녀는 민요부터 가요까지 한 곡조 부르며 가수가 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한 노래가 끝나면 앵콜과 박수는 그녀의 삶이자 행복이었다. 동네에서 열리는 각종 콩쿠르에 나가 대상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어느 콩쿠르에서는 나오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그녀의 부모도 딸이 노래를 잘 하는 통에 돌연변이가 나왔다고 놀리면서 그녀를 은근히 칭찬해 주었다.

왜곡된 삶에서 벗어나다.
그러나 그녀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인생이 바뀌고 말았다. 오빠가 공부를 잘 해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학비와 생활비가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를 하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서 중퇴를 하고나서고 그리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는 그녀는 집안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늦게 중퇴한 사실을 안 서울 고모가 놀라서 그녀를 서울로 오게 했다. 고모의 도움으로 한 백화점 점원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서울 생활은 별천지였다. 촌닭과 선머슴 같았던 그녀는 어느새 도시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돈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저축만 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용돈만 보내드리고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노래를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꿈도 펴기 전에 부친이 시집가라는 말씀에 결혼을 하고 말았다.
스물두 살에 결혼을 한 그녀는 신혼의 행복이 돋기 전에 부친이 타계하여 삶의 의욕을 잃게 되었다. 넉넉하게 보내드리지 못한 생활비, 자식으로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불효에 한 동안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불행이 연속으로 온다고 했던가? 결혼의 행복도 없이 큰 딸이 네 살 되던 해에 잠 잘 곳이 없어 겨울에도 찬 공간에서 보내야 했고 살기위해 하지 않은 일들이 없었다. 더욱이 둘째가 7개월 만에 출산을 하는 바람에 그녀는 패혈증이 생겨 병원에서도 희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위급했었다. 다행이 중환자실에서 20일이 지난 후에 그녀는 호전되어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서울과 부천에서의 악몽 같은 생활을 모두 잊고 지인의 소개로 안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마침 모친이 아이들을 돌봐주신다는 말씀에 그녀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을 해야 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조립 등 간단한 일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동네 지인이 부동산 분양사업에 동참해 보라는 권유로 사회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다. 처음 해 보는 사업이라 매우 낯설고 숫기가 없어 지적도 많이 당했다. 집에 돌아오면 세 살배기 자식이 그녀를 반기며 하루의 피곤함을 잊게 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시작했다.
분양사업도 잘되어 재테크를 할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동네 언니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노래를 한 번 불러보라는 권유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피날레를 했다. 동네 언니들은 노래를 너무 잘 한다며 그녀를 인천에 있는 노래교실을 소개해 주었다. 그녀는 군포에서 인천까지 다니며 노래연습에 매진하면서 여섯 분의 강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전국노래자랑이 있는 도시로 달려가 노래하는 매너와 방법을 터득했다. 드디어 그녀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2009년 처녀 음반을 제작했지만 그녀의 마음에 들지 못한 음반은 다 소각되어 버렸다. 마음이 상한 그녀는 제 2집을 제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 결과 2012년 다시 음반을 제작했다. 자신은 노래를 못해서 인지 곡을 인정받지 못해서 인지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새로운 희망을 갖다.
시름에 빠진 그녀는 노래를 그만 두려고 마음을 먹고 있을 즈음 사회봉사하는 한 지인이 재능기부를 하면서 재기를 권유해 주었다. 처음 나간 서울 중랑구 노인복지관에서의 봉사였다. 어르신들의 앞에서 노래를 하니 돌아가신 부친의 생각으로 눈물이 눈을 가렸다. 가수가 꿈인 그녀가 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무명으로 생활한다는 자체가 비참했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각오를 갖게 됐다. 장소와 무대와 상관없이 노래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생활철학을 갖게 된 그녀는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더 전개해 나갔다.
그녀는 서울 녹십자 요양병원, 인천 요양병원, 수지 요양병원, 다문화연예봉사회, 노인요양센터, 실버카페, 종로복지관 등에서 노래로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했고 이웃사랑후원회의 이사로 참여하면서 신망장애인복지시설, 광명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단체, 청송교도소, 안양교도소, 군부대 등에서도 그녀는 무료로 재능기부에 앞장섰다. 그녀는 재능기부뿐만 아니라 자장면 봉사, 후원물품 전달 등에도 동참하는 등 모범을 보여주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남모르게 생필품을 구입하여 전달하기도 했고 장애인단체에 매달 cms로 후원을 하고 있다.
그녀의 다양한 봉사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자 초대 공연이 조금씩 늘어났다. 충주 밤축제, 벚꽃축제, 곡성 장미축제, 가평 군민의 날 축제, 현리 포도축제 등 지방축제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케이블 방송에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녹화하고 있으며
아이넷tv 일본 오사카 공연을 다녀왔다.
재능기부와 사회에 기여한 그녀는 한국문화예술 대상,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대상,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 대한민충효대상 등을 받으며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해 주었다.
그녀는 세종대왕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등용하여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려고 한 세종대왕의 위민사상을 늘 보고 배운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바르게 성장하라고 조언하는 그녀는 왜곡된 학교생활과 가정생활로 자신뿐만 아니라 또래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며 예의와 공손함을 늘 배우라고 일러주고 있다.
그동안 스폰서도 없이 전국을 다니며 행사와 재능기부로 자신의 노래를 찾고 있는 그녀는 언젠가는 세상에 자신의 노래가 퍼질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노래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여러 번 가졌지만 재능기부 할 때 어르신과 장애인가족들이 손을 잡으며 노래가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불행 중에 행운인지 군포에 거주하는 한 지인이 경기헤럴드를 찾아가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해서 신문사를 방문했었다. 경기헤럴드 운영위원들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나서 2019년 하반기에 경기헤럴드 자체적으로 제3집이 나올 수 있도록 후원을 약속해 주었다고 한다. 온갖 풍파를 다 이겨내고 새로운 노래로 그녀가 바라는 노래가 세상의 희망이 되는 날이 곧 오도록 기원해 본다.

약력
경기도 가평군 출신
2009년 1집 음반 발표
2012년 2집 음반 발표
최고의 남자 음반 발표
이웃사랑후원회 이사 역임
양평군 나누리봉사단 이사 역임
한국문화예술 대상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대상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
대한민국충효대상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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