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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배려로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하만영 변호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15일
ⓒ 경기헤럴드


처음처럼 마음의 변화 없이 공정한 업무를 처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의 입신을 위해 불의와 타협도 해야 하고 권력의 눈치도 봐야 하지만 오직 초지일관으로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하만영 변호사. 그는 국제로터리클럽에 가입하여 지역을 초월한 봉사활동과 사회활동으로 칭송받는 변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성실한 효자로 생활하다.
삼천포와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으로 유명한 경남 사천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빈손으로 자수성가하여 부유한 농부가 된 부친은 지역에서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셔서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어려운 이웃과 친척들을 많이 도와주시는 인자한 분이셨다. 모친도 부친과 같이 겸손하고 자상하여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했고 오직 가족만 생각하신 분이었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명석한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예능과 체육에서 두각을 보였다. 어린이 미술대회에 출전하여 상을 타기도 하고, 키는 작아도 축구선수로 발탁되어 학교를 빛냈다. 보이스카우트에도 가입하여 지역행사와 잼버리대회 등에 참가하는 등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부모님은 그의 후견자 역할을 잘 해 주셨다.
늘 긍정적이었던 그는 또래로부터 인기가 많아 학급 반장을 도맡아했다. 집안의 형제가 많아도 부친이 손위의 형들을 법조인으로 키우기 위해 진주로 유학을 보내는 바람에 집안의 농사일은 어린 그의 몫이었다. 방과 후에는 뜨거운 여름에 논매기, 밤 농장의 풀베기, 농약 살포 등은 그의 인내심을 실험하기에 너무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도 그는 힘든 내색하지 않고 부모님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중학교로 진학해서는 집안의 일은 더 많아 졌다. 중학생이라는 신분이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고 10리나 떨어진 학교를 다니며 고된 농사에도 공부는 항상 최고 상위권이었다.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들보다 더 쉽게 설명을 해 줘 공부에 대한 흥미가 더 컸고, 완벽한 꼬마 선생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가 사회에 눈을 뜨게 된 중학교 2학년, 그를 유달리 귀여워했던 사회 선생님이, 고향이 부산이라 부산 구경을 시켜주셨다. 사천은 작아도 너무 작은 도시임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는 부산의 여러 곳을 구경하며 부친이 법조인이 되라고 하는 이유를 실감하게 되었다. 부산을 다녀온 그는 통학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그 절약한 시간에 조금이라도 공부하기 위해서였고 등교도 또래보다 더 빨리 했다.
그의 성적은 부친이 원하는 정도까지 향상되어 법대 입학 준비는 계획대로 잘 되어 갔다.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부친은 형들과 달리 진주로 유학을 보낼 기미를 보이지 않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형들이 진주로 유학 갔지만 부친이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자 그 만큼은 옆에 끼고 꼭 법조인을 만들겠다는 신념뿐이셨다고 한다.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다.
그는 집안의 농사일과 공부에만 전념했으나 원하는 법대에 떨어지고 말았다. 시골에서의 우등생에 대한 한계를 느낀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입시학원을 다녔고, 다음해 연세대학교 법대에 입학하여 부친의 꿈을 조금씩 이뤄주었다. 대학에 입학한 그는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부보다는 사회현상에 더 치중하여 책을 멀리하게 되자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법조인이 되길 부단히 원했던 부친은 서울로 상경해서 당장 군에 입대하라는 호령에 1학년을 마치고 카츄사에 지원하여 입대하고 말았다.
전역 후 그는 졸업 때 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사법고시를 준비해 갔다. 사법고시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연달은 실패로 그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집안 식구들에게도 미안하고 고향에 갈수도 없었다. 이제 마지막 사법고시라는 생각으로 공부한 결과 법무관 시험에 합격을 했다. 1997년 그는 사법연수원에 입소하여 2년간 실무교육을 받고 1999년 법무관으로 임관하게 되었다.
그는 제1군단사령부 검찰관, 제8보병사단 법무참모, 제11군단사령부 군판사, 수도방위사령부 군판사, 육군본부 군사법원장(직무대리), 육군본부 검찰관(징계장교), 수도군단사령부 법무참모 등 요직을 거치면서 법조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2002년 아프간 파병 때 의료지원단 법무참모로 파병되어 우리 군인들의 인권과 권익에 최선을 다 했다.
그는 법무관의 임무를 마치고 2007년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변호사 사무실이 잘 운영되었다. 마침 수원법원 안양지원이 개원되어 그는 봉사와 변호사(공증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안양시로 변호사 사무실을 옮기고, 2009년 5월 1일 공증인가 법무법인 ‘누리’를 설립하여 대표변호사가 되었다. 회사의 이름을 ‘누리’로 한 것은 ‘법이 지배하는 세상(누리)’을 지향한다는 하변호사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그는 실무를 더 넓히기 위해 2003년에 경희대학교 국제법무대학원에서 국제조세를 전공했지만 논문을 작성하지 못해 수료에 마치고 말았다. 늘 아쉬운 마음에 경원대학교 부동산최고경영자과정, 국립산업대 최고위건축개발과정, 시울시건축사협회 글로벌 건축최고위과정, 안양대학교 아름다운 리더 CEO과정, 연성대학교 외식산업 CEO과정, 중앙대학교 글로벌 건설CEO과정을 통해 대학원을 대신했다.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그의 인품이 널리 알려지자 내일신문, 다문화일보, 뉴스스탠드, 길림신문 등에서 기고를 요청하여 이혼, 부동산·건설, 외국인체류, 가정을 지키는 법 등을 연재하여 그의 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그 뿐만 아니라 대한변협 다문화가정 법률상담위원,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민사 및 가사 조정위원, 동안양세무서 국세심사위원, 안양시 동안구 만안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 평촌초등학교 학교폭력대책위원 등 사회안전망 구축에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였다.
2014년부터는 안양노인복지회관에서 매월 1회씩 무료법률상담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의왕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에서는 장애인권익과 인권을 위해 최고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가족을 위한 2013 공공시민후견인양성교육을 받고 안산에 있는 장애인 한 명과의 후견인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경남연립재건축, 삼성연립재건축, ㈜우현건축, (주)나엘에스피, (주)나엘엔지니어링, ㈜해광개발 등 기업체 들의 자문변호사와 경기도 상인연합회 자문변호사로서의 활동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다.

공정한 사회구현에 앞장 서다.
그가 법조인으로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안양시에 거주하는 한 지인이 봉사단체에 가입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을 주면 좋겠다는 조언에 그는 흔쾌히 안양관악로타리클럽에 가입을 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안양시를 포함하여 국경 없는 봉사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에 회장을 맡아 라오스의 한 초등학교에 전동식 우물 2정을 설치 해 주었고 대만 자매클럽 학생3명에게 소정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빚진자들의집에는 나은병원과 함께 어린이 백신을 접종하여 어린이 건강에도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10년 전 도서관을 만들어 준 필리핀의 학교에는 학용품과 옷 50박스를 전달하였고 28년 만에 열린 서울국제로타리대회에서 일본자매클럽과 대만자매클럽을 1주일 간 초청하여 한국문화체험을 실시하여 양국의 우애와 문화증진에도 기여했다. 특히 일본자매클럽이 창립 40주년이 되자 그는 20명의 회원과 같이 일본을 방문하여 축하 해 주는 등 열성적인 로타리활동을 전개 해 회원들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받았다.
그는 로타리클럽의 일반 회원으로 있을 때도 매달 첫째 주 금요일 노숙자 및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자장면 급식봉사활동, 안양시 범계역 롯데백화점 사거리 횡단보도 앞과 평촌역 이마트 맞은편 횡단보도 앞에 착한 그늘막 2개, 군부대 책 보내기 운동, 안양시민축제마다 회원들과 환경정화 운동 등 행복한 지역 만들기에도 일조하고 있다.
특히 2017년 4월 안양관악클럽 국제로타리 가입승인 30주년 행사 때 안양지역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봉사단체에게 800만원 상당의 마티즈승용차를 기증하였고, 안양지역 보육원에게 열악한 환경 정비를 위하여 약 500만원 상당의 내부시설 공사를, 안양지역 고등학생들에게 200만원 상당의 장학금도 지급하였다. 2018년에는 평촌역상가상인회와 함께 경기도신체장애인복지회 안양시지회에 라면과 김치 등 생필품을 직접 운반하여 전달했고 안양시와 과천시의 청소년들에게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학교폭력의 사회학 도서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모두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오직 국가와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고 최악의 위기에서도 국난을 극복하는 탁월한 능력과 애민사상을 늘 본받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될까’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명제에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얻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책과 신문 읽기’를 게으르지 말라고 일러주고 있다.
고시에 합격을 하고 편안한 변호사생활을 마다하고 부친이 물려준 부지런함과 착한 천성을 자신보다 어려운 분들과 나누는 하만영 변호사. 그는 권위와 형식을 벗어난 이타정신으로 우리들에게 커다란 언덕이 되어주고 있다.
그가 바라는 세상은 조그마한 봉사라도 실천하는 사람, 존중과 배려로 나눔이 있는 사회, 법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많은 봉사활동과 사회활동을 통해 그가 바라던 사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알 수 있듯이 빠른 시일 내에 공정한 사회가 구현되도록 기원해 본다.

약력
경남 사천시 출생
연세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12회 군법무관임용시험 합격
육군본부 군사법원장(직무대리) 역임
변호사 하만영 법률사무소 대표 역임
법무법인 누리 대표변호사(안양지회)
경기도 상인연합회 고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장애인법률지원변호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민사 및 가사 조정위원
국제로타리 3750지구 안양관악로타리클럽 회장 역임
동안양세무서 국세심사위원
안양시 동안구 만안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
국제로타리3750지구 관악리더스로타리클럽 회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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