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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으로 행복한 음악공동체를 실현시키고 있는 강신웅 교수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11일
ⓒ 경기헤럴드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준비와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에 달려있다. 미래를 위해 늘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제공받으며 그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위해 부모님이 바라던 삶을 포기하고 일념으로 꿈을 실현시킨 강신웅 교수. 그는 음악을 통해 건전한 사회문화를 조성하고 후학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음악에 빠져 꿈을 바꾸다.
안양사와 만안교로 유명한 경기도 안양시가 그의 고향이다. 그는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나 근면성실한 부친의 사랑을 받고 성장했다. 부친은 운수업을 하셔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했고 어려움 없이 그는 성장했다. 특히 부친은 지역의 유지로 유명해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각종 후원이나 어려운 분을 도와주는 사회활동을 모범적으로 하셨고, 모친은 오직 살림만 하신 현모양처이셨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카락이 붉은 색을 띠었다. 또래들은 빨간 머리라고 놀려도 그는 늘 웃으며 다정다감하게 대해 주었다. 그러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아졌고 그의 집에 한 번 놀러 온 친구들은 그를 두 번 다시 놀리는 경우가 없었다. 당시 그의 집에는 식모와 운전기사를 두고 생활할 정도로 귀공자 생활을 했다.
운동신경이 발달한 그는 덤블링을 잘 했다. 선수로 선발되어 운동을 열심히 하던 중 부친이 판검사가 되라는 말씀에 서울 명문 수송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그는 부모님의 소원대로 공부를 매우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형이 기타 치는 모습에 반해 기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학원과 과외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시간만 되면 기타 연습에도 매진했다. 그 결과 그를 추종하는 실력자들이 없을 정도로 특출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보다 기타에 더 열중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4인조 그룹 델타스를 구성해 안양시민회관에서 공연을 가졌다. 찬조출연으로 옥슨, 키즈 등 당대에 이름이 있었던 그룹이 그의 그룹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는 학교뿐만 아니라 음악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현재 안양메트로병원 부근의 산에서 연습을 하다 걸려 학교로부터 유기정학을 받게 되었다. 산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자 수원공고에 다니는 친구가 도전을 하다 주민의 신고로 발각되고 말았다. 그 후로 학교에서는 기타와 팝송에 심취되어 있는 그를 문제아로 찍어 정기적인 상담과 훈육을 받아야 했다. 그의 그동안 행적이 모친에게 다 알려지자 모친은 대노하며 그에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직장을 잡을 수 없어 막노동을 해야 한다’는 모친의 마지막 충고에 그는 겁을 먹고 대입준비에만 몰두했다.

미래의 음악을 예측하다.
그 결과 그는 한양대학교 불문과에 합격을 하고 일반 학생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했다. 그는 사람일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남들이 신청을 거의 하지 않는 교직을 이수했다. 학교생활에 충실한 그를 본 부모들은 안심을 하고 그의 미래를 위해 아낌없는 후원을 해 주었다. 사실 그의 동기생이나 학교 그룹의 실력들이 그를 따라 올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그는 조금 자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2학년 때 군에 입대를 하고 문선대에서 근무를 하며 자신의 음악을 연계해 나갔다. 전역 후 그는 전공에 심취되어 졸업과 동시에 부평에 있는 여고로 추천을 받았다. 그 당시 졸업과 동시에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이상과 맞지 않는다며 교사직을 거절하고 음악학원 강사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학원에서 기타를 교육하던 중에 학원의 보컬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딕훼밀리 싱어 박경진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박 선배는 그의 기타연주 실력을 보고 즉석에서 벗님들 그룹에서 오디션을 보라고 권유해 주었다. 그는 선배의 말대로 오디션에 참가하여 당당히 합격하고 벗님들 그룹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전국을 돌며 음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새로운 희망을 갖던 중에 그룹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어 다른 그룹에 합류하면서 음악을 계속 해 나갔다.
그는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중음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Jazz 이론가 장광철 선생 으로부터 2년 정도 사사를 받았다. 장광철 선생은 그의 능력과 재능을 알고 尙美 음악대학 작곡과에 추천을 해 주었다. 그는 일본에서 5년 반 정도 생활하면서 작곡에만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부친이 폐혈증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그는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여 공부에 소홀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한국에서 음악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나이가 40을 바라보고 있어 무대에 서는 것보다 작곡과 제작에 치중했다. 그는 정탁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 등 다수 앨범과 신나의 아시나요, 재회 등도 제작하여 제작가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 후 군포의 제1호 노래인 철쭉꽃비가 내리면, 우리동네 이야기 #2, 우리동네 이야기 #3 등을 제작해 군포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우리동네 이야기 #3는 직접 노래를 불렀다.
그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를 전공하고 실용음악학회 창립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중적인 음악이 많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자 그는 대학에서도 실용음악과가 신설될 것으로 확신하고 이태리 가스파레스포티니 공립음악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세한학교에 강사로 제자양성에 뛰어 들었다. 학교에서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전임교수로 발령을 내 그는 현재 세한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전임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그는 대학에 재직 전에도 군포예총회장을 맡아 군포시 철쭉대축제를 주관하여 오늘의 군포시 축제를 자리를 잡게 하는데 기여했고 찾아가는 우리마을 음악회를 더 활성화하여 공연의 질을 향상시켰다. 또한 군포예술지를 발간하여 군포시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긍지와 소명의식을 높여 주기도 했다. 그리고 동아리경연대회 주최와 군포예술사업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전국수리음악콩쿠르 운영위원장, 전국수리음악콩쿠르 자문위원장을 맡아 전국대회로 승화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다.
그는 지역에서 전문적인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포크 공연 예술단을 결성한 후 예술감독을 맡아 지역고유의 특성을 살린 공연을 연출하여 시민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고 있다.
그는 대중음악작곡가로 (사)한국음악저작권 협회, (사)한국음원제작자 협회 회원으로도 왕성한 활동과 사단법인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군포지회장으로서 지역에서 주최되는 각종 공연의 질 향상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그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을 전개했으며 군포시 문화재단 설립추진위원으로도 활동하여 군포문화재단 설립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이와 같이 음악에 자신을 바친 그는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창작부문 작곡∙작사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사)한국연예예술인협회 표창장,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표창장, 실용음악대상수상 등을 받아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경기도로부터 문화예술부문에 공헌하여 경기도지사 표창장,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장과 선행예술인 부분에서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받아 그의 성실과 선행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군포시에서도 그의 음악공헌도를 인정하여 제 18회 군포시민대상 문화예술체육부문에서 대상을 수여하여 그동안의 노고를 시민들로부터 위로받기도 했다.
그의 신조대로 그는 항상 노력과 준비를 해 놓고 있다. 불어 중등학교 2급 정교사와 일본어 능력시험 1급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외국어에 능통한 그는 인자함과 어진 모습도 시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그는 성실과 근면의 모습을 각인시켜 주신 부친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어려서 어려운 이웃에게 항상 자상하게 대해 주시고 후원도 아끼지 않으신 부친의 경천사상을 늘 본받고 싶어 한다고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조언해 주고 있는 그는 미래를 위해 노력과 준비를 게으르지 말라고 한다. 개인 누구에게나 기회가 오기마련인데 준비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고 젊음을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라고 일러주고 있다.
부모의 말이 곧 법으로 알고 착한 아들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꿈만큼은 부모에게 양보하지 않은 강신웅 교수, 그는 부친의 병환으로 일본에서의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것을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실용음악의 활성화를 예측하고 준비와 노력을 하였기에 오늘날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음약이야말로 행복한 공동체 구성과 화합을 이루는 매체는 없어 음악의 생활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어느 장르의 음악이든 개인의 취향을 중요시 하고 있다. 그의 소원대로 군포에 문화재단도 설립되어 문화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한 공동체 만들기에 동참했던 자신을 대견해 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학원 강사시절 고등학교 3학년생인 가수 신나를 처음만나 그때부터 인연이 되어 30여 년 동안 음악활동을 같이 하는 그의 신의는 음악가로서 존경심이 생긴다.

약력
경기도 안양시 출생
한양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석사)졸업
한세대학교 음악예술경영 박사과정 수료
이태리 가스파레스포티니 공립음악원 박사학위 취득 (D.M.A)
Group Sound “벗님들” 활동
대중음악작곡가
(사)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군포지회장
전국수리음악콩쿠르 운영위원장 역임
지포크공연 예술단 예술감독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위원 역임
세한대학교 실용음악학과 전임교수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창작부문(작곡.작사) 우수상
제18회군포시민대상 수상(문화예술체육부문)
실용음악대상수상
경기도지사 표창장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장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8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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