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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연구로 편백나무의 대가가 된 이익균 박사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1월 04일
ⓒ (주)경기헤럴드


예전에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이 행동거지의 주춧돌이 되었었다. 말의 실수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막대한 악영향을 줘 집안에서 조차 나가서 말조심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신중하고 중용의 마음으로 만사를 처리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후배들로부터 늘 존경을 받고 있는 이익균 박사.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후대의 산림을 위해 편백나무를 한국기후에 적합하도록 연구하여 특허출원을 한 상태이다.

인정받는 청년이 되다.
정선아리랑과 자연환경의 보고 강원도 정선군이 그의 고향이다. 그는 삼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귀하게 대접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은 농사로 자식 교육에 최선을 다 했으며 여유 있는 생활로 자식들에게 어떠한 농사일도 못하게 했다. 대부분 생활을 자급자족을 하신 부친은 동네 주민들의 섬김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셔 지역에서 호인으로 평가받으셨다. 그래서 유하신 모친이 자식들 교육에 더 만전을 기했고 애착심이 많으셨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책보다 운동을 더 좋아했다. 축구와 여러 운동에서 두각을 보여준 그는 특히 핸드볼 선수로 선발되어 군 대항 대표로 출전을 하기도 했다. 늘 집에서 장남이라고 귀하게 대해 주어 집 밖에 나가면 부모님에게 버릇없는 아이라고 혹시 전달될까 언행에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그는 학교에서 멀리 통학하는 친구들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면 그의 집에 데리고 가 식사를 제공하며 이웃과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의식을 갖기도 했다. 또한 그는 내면적인 면에서도 성숙한 아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독서를 많이 하여 박식한 아이로 통하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 성실하게 교회만큼은 잘 다녔다. 그러나 부모 모르게 어느 날 서울로 무전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집에서는 착한 아들 잃었다고 난리가 났지만 그는 서울 땅을 처음 중학교2학년 때 밟아보게 되었다. 고향 정선은 아담하고 조용한 시골이지만 서울은 그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그는 방학이라서 학교에서는 무전여행 사실을 몰라 어떠한 처분을 받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도회지로 유학을 간다면 분주할 때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는 기독교 동아리가 있어 그가 학교에 빨리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정선 시골의 학교에서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학교시절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방학 때면 성경학교에서 초등학생부 대상으로 오락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더 의젓해 지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을 받은 그는 교육대학에 가서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그를 그의 담임선생님이 아들처럼 챙겨주곤 했다. 담임선생님의 고향이 대구라 그에게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로 진학을 권해 그는 경북대학교 환경공학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시인이면서 수학교사인 그의 담임선생님은 대구로 전근을 가셔 그를 1년 동안 그의 집에서 기숙을 시키셨다.

산림자원의 중요성을 인지하다.
그는 기독교 선교단체 동아리에 들어가 벽지와 농촌에서 봉사활동과 선교활동으로 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담임선생님 댁에 많은 불편을 드리는 것 같아 자취생활을 결심하고 1년 만에 자취를 시작했다. 그는 집에서 학비와 생활비 전부를 요구하기엔 너무 송구한 마음이 있어 중학교 과외를 시작했다. 과외비로 그는 생활비와 교재비 등 자신의 용돈은 충족할 정도로 수입이 되었다. 어느 덧 4학년이 되어서 미래에 대한 설계가 필요했다. 그가 전공한 환경공학과에서는 자격증이 필수였다. 그는 환경공학자격증을 취득하고 더 전문성을 갖기 위해 경북대학교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를 하고 전역 후 학자의 길로 가기 위해 박사과정을 입학을 했다. 당시는 환경공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그리 인기 있는 과는 아니었다. 기업의 취업이나 연구소에 취업할 정도로 문호가 넓지 않아 그는 대학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희박한 교수의 꿈을 버리고 삼익건설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삼익건설에서는 그를 환경실험실로 발령을 내어 실험실의 안정에 기여하도록 했다. 회사에서의 성실과 책임감을 인정받은 그는 외국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되었다. 그는 현장에서 몰딩 압축강도 등 건설 안전에 최선을 다하여 회사의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 그의 능력이 타 회사에 알려지자 대림건설에서는 과장으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그도 더 넓은 곳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는 대림건설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의 전공을 최대 발휘하였다. 묵묵히 일만 하는 그의 실무는 후배들에게 늘 거울이 되었고 진급을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아 가장 본받고 싶은 상사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1년 반 만에 부장으로 승진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는 해외지사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여러 나라 자연환경의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삼림자원을 본 그는 감탄을 받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의 삼림자원 대한 상세한 자료를 구축하며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국내의 많은 회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즈음 IMF가 도래하여 그도 해외지사에서 본사의 기획실로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그에게 떨어진 첫 번째 업무가 구조조정이었다. 그는 며칠을 술로 보내며 누구를 정리할 것인가 평생 겪어야 할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고민 속에 빠진 상태로 출근하는데 길가에서 어린 아이가 한 아빠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포기하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젊은 사람보다는 임원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해야겠다는 신념이 섰다. 그는 회사 이사급들을 정리하면서 젊은 직원들은 대부분 희망을 안고 근무를 할 수 있게 구조조정 안을 올렸다. 회사에서도 그의 구조조정 안을 받아들여 구조조정을 완료한 후 그는 회사에 사표를 쓰고 그만두었다. 후배 직원들은 그를 더 존경하게 되었고 지금도 교류를 한다고 하니 그의 행실이 얼마나 따뜻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편백나무의 대가가 되다.
회사를 그만 두고 할 일이 없었던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환경회사를 설립했다. 각 지역에서 쓰레기 소각과 병원에서 나오는 액체상의 폐기물처리가 골칫거리였다. 그는 액체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이동식 소각로를 개발하고 시판에 들어갔다. 그러나 환경청(지금은 환경부)의 법규에 이동식 소각로에 대한 규정이 없어 그는 판매도 해 보지 못하고 회사를 접고 말았다. 그동안 해외파견근무하면서 모아 둔 재산은 모두 날리는 최악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개발이 완료되었을 때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최상의 소각로라고 호평을 해 주었지만 법규 하나 없는 상황에서는 그의 우수한 제품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깨끗하게 회사를 정리하고 외국합자회사에 취업을 했다. 다행히 입사한 회사는 수질탐사 등 환경과 관련이 있어 그는 이집트, 모르코, 일본 등 많은 나라의 수자원과 산림자원 자료를 효율적으로 구축할 수 있었다. 특히 그는 일본 탐사기간에 본 편백나무를 잊을 수가 없었다. 편백나무는 살균과 건강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최적의 산림자원이라서 그는 후대에게 물려줄 자원 중 최고의 자원이라고 자평을 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편백나무 연구에 도전을 했다. 편백나무는 성장조건이 까다로워 우리나라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연구하면 곧 성공하겠지라는 자만을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를 해도 만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후대의 자원에 대한 책임감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실패를 거듭한 결과 7년 만에 드디어 만족할 만한 성공을 하여 특허출원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재배실험에 성공을 하여 여러 지인들과 함께 (주)케레스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의 실적을 높게 평가한 환경청에서는 일부 연구비를 지원하며 편백나무 식목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평생 일과 연구에 매진했다. 그로인해 이웃과 함께 할 시간적 여유도 없어 그동안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의 한 지인이 장애인가족의 복지증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자 그는 흔쾌히 승낙을 하고 경기도신체장애인협회 군포시지부의 자문위원과 군포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후원이사를 맡아 후원자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그의 회사 고문변호사를 군포와 경기도 일대의 장애인가족 무료법률봉사를 하도록 권유하여 함께 장애인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주자학을 연구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확립시킨 퇴계 이황을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대부분 높은 관직에 있으면 학문을 멀리하는데 늘 연구하고 보완하는 이황의 연구 정신을 늘 본 받고 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에 역점을 두고 예의바른 청소년기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고 있다. 세 번 생각하고 말해도 실수를 하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여과 없이 내뱉는 언어폭력에 의해 사회질서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해외에서 산림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자신의 역할을 인지한 이익균 박사는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편백나무의 보급에 활로를 개척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여 후대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사명감에 우리는 그의 끊임없는 연구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약력
강원도 정선군 출생
경북대학교 환경공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대학원 환경공학 전공
경북대학교 대학원 공학박사 취득
삼익건설 근무
대림건설 부장 역임
림곡환경주식회사 대표이사 역임
(주)케레스 회장
편백나무 특허출원


송용순 기자 / sys5594@hanmail.net입력 : 2017년 1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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